[2021년 3번째 책]

이 책은 저자가 공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계약직 노동자로 일한 첫 4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임계장은 임씨 성을 가진 계장님이 아니라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준말이다.

저자는 공기업에서 많은 일을 하면서 과장으로 정년퇴임하였고 큰 돈 들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금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아직 2년 정도를 기다려야 했고(안 그러면 50%의 금액만 받을 수 있음) 퇴직을 하자마자 대출금을 갚으라는 은행의 압박을 받았고, 둘째가 대학원 공부를 예정보다 더 하게 되어서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렵게 사무직 자리를 구했지만, 동료들이 모두 본인을 어렵게 대하는 걸 보며 '본부장 정도 한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나이 든 사람에게 사무직 자리는 없다'는 걸 이내 깨닫고, 터미널 배차요원을 시작으로 아파트 경비원과 오피스텔 경비원을 거쳐 터미널 보안 요원으로 취직한 뒤 몸을 다쳐 타의로 해고를 당하게 된다. 임계장 이야기는 그 4년간의 노동일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을 잘 쓰셔서 책장은 빠르게 넘어갔지만 마음은 그만큼 빨리 무거워졌다.

계약직으로서의 첫 일자리였던 터미널 배차요원으로 일했을 때의 이야기에서는 자사의 버스노선이라는 상품을 운영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회사에서 3명이 하는 양의 노동을 시켰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본래 업무가 아닌 탁송을 강요하면서 거기에서 나는 수익은 100% 회사에서 가져간다니...도대체 이들에게 계약직 노동자란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서글펐다.

내가 사는 아파트 경비업체에 고용되어 계신 분들도 다 나이드신 분들로 되어 있다. 평소에도 이 분들이 순찰은 물론이고, 분리수거 물품 정리하고 요즘처럼 눈이 내릴 때 눈 치우는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이 책에 씌여진 것처럼 심도있게 그 분들의 노동을 생생하게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재활용품과 음식물쓰레기를 정리하면서 벌레가 옮겨붙고 화학약품에 노출되기도 하는지는 정말 몰랐다. 그들을 고용한 회사에서 "당신 말고도 할 사람 많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야 계약직 노동자와 관련된 뉴스에서 듣기는 했지만, 아파트 주민 중 일부의 말도 안 되는 갑질로 결국 해고 당하는 장면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주민의 불만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주민의 불만은 무조건 경비원의 잘못으로 치환되는 부조리한 현실. 그리고 그런 것을 가능케 하는 불합리한 계약서. 경비원은 휴게시간을 많이 보장받는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분류되어 주52시간 제한을 받지 않고 최저임금이 오르면 휴게시간을 몇시간이고 늘려서 월급은 제자리인데, 실제로는 제대로 쉴 시간과 공간이 없이 석면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초소에서 졸았다고 주민이 민원을 넣는 일까지도 있다니 이래저래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다.
그나마 "경비원법"이 바뀌어서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자에게 그 외의 업무를 시킬 수 없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경비원 인원을 줄이는 아파트 단지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과 관련해서 서울시에서 연구 용역을 진행한 적이 있다는데, 비용이 마냥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기존에 계시던 분들을 소모품처럼 그냥 해고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그것은 알기 싫다] 379b. 경비원 고용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 - https://youtu.be/4fOEWYj9aR8

또 하나 가슴 아팠던 것은, 계약직 노동자는 최소한의 인원을 쓰기 때문에 몸이 아프거나 자식이 결혼을 해서 휴가를 내고 싶어도 대신 일할 사람이 없으면 휴가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업무 중에 산재에 해당하는 부상을 입었는데도 사용자가 즉각 해고 외에 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저자가 거쳐간 일자리 모두가 나이드신 분들에게 최저임금 외에 다른 복지는 커녕 유니폼이나 빗자루 같은 최소한의 물품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서 저자의 말대로 "최저의 비용으로 최상의 노동을 바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최소한 저 분들은 물건이나 노예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한다면 저럴 수는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 방송작가유니온의 이야기를 알았을 때도 그렇고, 작년 코로나 시국에서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된 혼란 속에서,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이제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산업발전을 이룩하면서 건강보험과 연금제도를 제외하고는 국민의 복지와 관련된 것은 민간에 거의 위탁했었다. 그러나 IMF 이후로 고용의 형태가 바뀌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린 지난 20년 동안은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제는 GDP 3만불 시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지금 논의되는 "전국민 고용보험제도" 뿐만 아니라 교육 격차등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빠르게 시행되고 자리잡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전국민 고용보험제 관련 정부 로드맵https://www.korea.kr/news/policyBriefingView.do?newsId=156428888
※ 방송작가유니온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H8S1Bz_-OWIvaR4U1nxH7Q

더불어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이야기했던 정책들이다. IMF 이후 변화된 고용형태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치권에서도 노동계에서도 논의해볼만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 김종철 정의당 대표 인터뷰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248

10여년 전 입사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것 중의 하나가 "정년퇴임"이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무난히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로 회사가 어려워지고나서부터는 '어쩌면 어려울 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 마흔을 넘고 나니, 정년 이후도 대비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이 들어서 몸쓰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편이어서 자신이 없다. 이제부터는 조금씩 정년 이후의 삶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필요하다면 거기에 맞춰 앞으로의 커리어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책이야기 > 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 정미진  (0) 2021.01.31
김지은입니다  (0) 2021.01.25
한자와나오키 2권 - 이케이도 준  (0) 2021.01.24
싸움의 기술  (0) 2021.01.10
거룩한코미디 - 곽영신  (0) 2021.01.0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