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다섯번째 책]

매년 연말이 되면 모든 언론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2020년에는 거의 모든 언론이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아마 오거돈 前 부산시장과 故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있었기에 더 주목받았던 것 같다. 원래는 별로 읽을 생각이 없었지만 모든 언론사에서 꼽았으니 한번은 읽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손에 들었다.

이 책은 구조가 잘 짜여진 이야기라기보다는 저자가 입은 피해와 고통의 나열이다. 저자는 안희정 前 충남지사 선거캠프에서부터 수행비서로 일하면서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고, 미투와 재판 과정에서 그의 주변인과 지지세력으로부터 2차 가해를 받았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마 그 고통은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불과 몇 년전일 뿐인데 선거캠프에서부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선거를 이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부조리와 불법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직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성희롱을 당했다고 이야기해도 "네가 조심해라"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특별한 권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선거캠프가 이 정도라면 그 위의 조직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안희정 前 충남지사가 성추행으로 직을 내려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에서 성폭력 문제가 반복되었던 것도, 여성인권을 보호하는 인권변호사 출신의 시장이 성추행을 행했던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하긴 사회 정의를 이야기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도 정작 자기들과 같이 일하는 방송노동자의 노동권은 무시했다고 했다. 영화 "색계"에서 친일 정보부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성적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왕치아즈(탕웨이)도 순간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성추행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2차 가해에 의한 고통이었다. 피해자는 인터넷과 문자로 쏟아지는 2차가해로 정상 체온 유지도 안 될 정도로 몸이 망가졌었다고 한다. 지지하는 정치인이 잘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를 집단 린치하려는 심정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게 성폭력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야 실현되는 게 아닐텐데 말이다.

솔직히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차기 대선후보이자 충남도지사로서 평소 경찰을 포함한 온갖 기관의 수뇌부와 수차례 직접 연락하는 사람을 아무 것도 없는 개인이 혼자서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도 말이다.

우연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같은 당의 국회의원을 성추행하여 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에서도 이런 일이, 그것도 우리나라 권력의 상징 중 하나인 국회의원을 상대로 일어났다니 씁쓸하고 너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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