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일 삼성화재 외국인선수 가빈은 LIG와의 4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한세트 22득점. 한경기 58득점을 올리며 신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날 풀세트 경기의 피로는 이틀만에 풀리지 않았고, 5라운드 항공과의 경기에서 큰 영향을 미치면서 삼성이 3대0 패배를 당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소설을 가미하여 한국에서 3년째 고생하고 있는 가빈을 위한 변명을 써보고자 한다. 이 글에 쓰인 Data는 KOVO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하여 필자가 가공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아...한국에 온 지 3년이 되었는데 어제처럼 힘든 경기도 없었어요. 내가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졌어요.하지만 LIG랑 정말 치열한 5세트 경기를 한 지 3일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진욱이형도 광우도 지쳤지만 나도 어제는 정말 힘들었어요. 방송에서 자꾸 지쳐보인다고 했대요. 

  요즘은 내가 생각해도 무리하는 것 같아요. 지난 2월 2일에 최다득점 기록을 갈아치우기는 했지만, 공격시도도 101번이나 했어요. 다른 선수들은 보통 풀세트 경기를 하면 50~70번 정도의 공격시도를 한대요. 101번은 좀 심한 것 같아요. 그래서 기록을 뒤져 봤어요. 

 

  

 (표1) 가빈 V리그 역대 공격기록

 

  V리그에 온 이후 저의 기록이에요. 통산 공격성공률 56.16%, 점차 높아지는 공격 성공률이 아름답게 빛나지만 지금은 얼마나 많이 뛰었는지를 보는 거니까 공격시도를 주목해서 보기로 해요. 정규리그에서는 경기당 50번 내외, 플레이오프에서는 수치가 높아져요. 급기야 챔프전에는 경기당 70개가 넘는 공격시도를 했어요. 이걸 세트당 기록으로 바꾸면 정규리그에서는 13~15회. 플레이오프에서는 17~18회 공격을 시도하네요. 

  하나 더 눈에 띄는 건 총 공격시도 회수에요. 09~10 시즌에는 1811회, 지난 시즌에는 29경기 1380회 했는데 올해는 25경기 뛰었는데 작년 수치에 거의 근접했어요. 아마 앞으로 11경기 남았으니까 잘 하면 09~10 시즌 수치를 넘을지도 모르겠네요. 작년에 현대에 있던 박철우 선수가 와서 좀 줄어드나 싶었는데 기록을 보다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네요.

  여하튼 내 기록만 보니 이게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잘 안 와요. 그래서 남들이랑 비교를 해 보기로 했어요.

 

 (표2) 2011~12 V리그 경기당 공격시도 순위

  이번 시즌 남자부 경기당 공격시도 순위 1위~15위에요. 젤코형이 제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3위 이후부터는 경기당 11회 이상 차이가 나요. 젤코 형 빼고는 저랑 비교가 안 되요. 공격성공율도 제일 높은 것 같아요. 특히 세트당 공격시도 숫자를 보면 젤코 형보다도 훨씬 많이 하고 있어요. 3위 마틴은 풀세트를 많이 해서 경기당 공격시도가 많은 가봐요. 세트당 기록을 보니 LIG 김요한 선수보다도 공격시도가 적네요. 그러고보면 김요한 선수도 대단한 것 같아요. 작년에 발목 때문에 고생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우리 팀 박철우선수는 11위에 랭크되어 있어요. 한국 선수중에는 6위네요. 현대에 있을 때는 한경기 50득점도 하고 아주 뛰어난 선수였는데 아직은 적응기가 필요한 걸까요? 

 

   (표3) 프로배구 역대 최다 공격시도 순위

※ 수작업으로 집계했기 때문에 공식기록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2일에 제가 101번 공격시도를 했어요. 그렇다면 V리그 최다 공격시도 기록은 어떻게 될까요?  일일이 홈페이지에서 지난 V리그 모든 경기 결과를 찾아봤어요. 혼자서 수작업으로 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역대 최다 12개 중에 제 이름이 9번 나와요. 저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아...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해요.

  공격시도를 가장 많이 했던 건 09~10시즌 챔프전 7차전이에요. 105번. 대단하지 않아요? 일일이 찾다보니 풀세트 경기를 해도 보통은 50~70회 사이의 공격시도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그거에 비해서 105번 공격시도라면 다른 선수의 1.5배~2배 정도는 스파이크를 하기 위해 더 많은 점프를 했다는 거에요.

앞에서 살펴 본 저의 역대 공격시도기록이 플레이오프에서 높았는데 공격시도가 많았던 경기는 오히려 정규리그에서 많아요. 지난 2월 2일은 정규리그 중에서 제일 많은 공격시도를 한 날이었어요. 이날 김요한 선수도 82회의 공격시도를 해서 국내 선수로서는 한 경기 최다 공격기록을 세웠어요. 대단하죠?

 

  근데 가만히 보다보니 최다공격시도 경기는 죄다 삼성화재 외국인 선수만 보여요. 아...저는 그동안 팀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걸까요?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삼성화재를 거쳐간 역대 외국인선수 선배들도 나처럼 이렇게 고생했을까요?

  

   (표4) 삼성화재 외국인선수 역대 공격기록 

 

  고생문이 열리기 시작했던 건 레안드로 선수부터였어요. 레안드로 선수부터 경기당/세트당 공격시도 기록이 상승하기 시작해요. 이건 김세진/신진식이라는 걸출한 선수들이 각각 2006년,2007년 은퇴한 게 영향이 클 거에요.  제일 많이 했던 안젤코형도 정규리그에서는 세트당 10개 정도의 공격을 시도했어요. 그런데 수치가 저보다 너무 작아요. 레안드로 선수까지야 그렇다 쳐도 안젤코 형보다도 훨씬 많은 건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 팀에도 박철우/김정훈/홍정표 같은 좋은 선수들이 있는데 공격에서 조금만 저를 도와줬음 좋겠어요.

  만약 다음에 삼성이랑 계약하게 되면 공격시도/디그시도 등등에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으로 하게 되면 돈을 더 받는 옵션 계약을 해야 겠어요. "가빈화재"라고 기자들이 자꾸 묻는 것도 짜증나고, 지난 시즌 전부터 감독님이 계속 약속을 했지만 내 공격비중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네요. 이렇게 1~2년 더 뛰면 무릎이 망가질 까봐 걱정도 되요. 부디 빠른 시간내에 박철우 선수가 팀에 적응했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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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 제도는 각 팀이 약한 포지션을 강화하여 리그의 전력 평준화를 이룸과 동시에 팬들을 불러 모으고, 외국인 선수를 통해서 국내 선수들의 기량을 발전시킨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에만 의존하는 플레이는 오히려 국내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제한시키고 팬들의 관심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여러 포지션에서 선수를 키우기 어렵게 된다.

  

 

(표5) 10~11 V리그 팀별 공격점유율 비교(외국인선수가 있는 팀) 

 

  이번 글을 쓰면서 과거의 기록들을 보다보니, 공격이 이렇게 한 명에게만 몰렸던 리그가 없다. 위의 표를 보면 정도만 다르다 뿐이지 항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팀들의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크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빈이라는 선수 한 명이 가져가는 점유율이 56.98%나 차지하는 삼성의 기록은 극악이다. 

  삼성의 입장도 이해는 하고 싶다. 가빈 말고는 공격할 수 있는 자원이 없다고. 지금에 이르게 된 건 김세진/신진식/장병철 등 좋은 선수들이 은퇴했지만 항상 선두권에 위치했기 때문에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를 뽑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들도 빈약한 공격력을 메우기 위해서 무든 선수가 피나는 체력훈련/수비훈련/2단토스 훈련을 했고 상대팀의 전력을 철저히 분석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V리그의 정상을 지켜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빈이라는 선수의 높은 타점을 최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은 이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가빈이 정신적으로나 기록으로나 대단한 선수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 글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가빈은 삼성에서 팀내 디그 순위 4위이고, 박철우가 영입된 이후 가빈이 레프트에 위치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리시브도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는 마틴에 이어 두 번쨰로 많이 하고 있다. 수비/공격 양면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고 팀을 독보적인 1위로 올려 놓은 1등 공신이 바로 가빈이다.

  하지만 지금의 선수 구성이 가빈 하나에 매달려야 할 만큼 그렇게 극악인가? 나는 한 경기에서 50득점을 했던 현대의 박철우를, 상무에서 주공격수로 활약하던 김정훈/홍정표를 기억한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몇 년을 해도 적응을 못 하고 있다면 삼성의 전술이 그들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앞으로 삼성 경기를 보다가 가빈을 비롯한 외국인 선수들이 프로배구선수가 아닌 외국인노동자처럼 느껴지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덧) 그나저나 포스트 하나 쓰자고 몇날 몇시간을 투자했는지 모르겠다. 에구....잘 알지도 못하면서 밥벌이도 아닌 걸 붙들고 이러고 있는 나도 참 한심하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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