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V리그가 시작되었다. 각 팀 전력이 평준화되면서 흥미로와졌다고는 하지만 속을 보면 씁쓸하다. 용병 삼국지, 가빈화재, 마틴항공. 이번 V리그의 키워드다. 그만큼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작년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 개중에는 애초부터 작정하고 하는 팀이 있는가하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하튼 작년보다 두드러진 외국인선수 몰빵경기이다. 우리나라 선수로서 주전라이트로 뛰고 있는 선수는 드림식스 김정환, 신협상무 조용욱 선수가 유이하다. 그나마 조용욱 선수는 센터 출신이고 팀에 마땅한 라이트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최삼환 감독이 급조한 선수.

 

2011년 월드리그에서 우리나라는 박기원호로 대표되는 스피드배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11~12 V리그에서는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몰빵배구가 득세하고 있다.

 

우리나라 배구가 발전하고 있는지 후퇴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외국인선수에게만 의존하는 배구가 옳다고 이야기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외국인선수에게만 의존하는 경기를 할 것인가. 신체조건이 외국 선수들보다 열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월드리그에서 선보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드림식스가 하고 있는 고른 분배에 의한 빠른 배구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가대표 외의 다른 팀에서는 스피드배구를 구사하는 감독이 없다는 것이다. 대표팀에서는 한달 정도 스피드배구를 한 들, 소속팀에서 5~6달을 몰빵배구를 하면 소용이 없다.

 

외국인 몰빵배구는 제대로 된 라이트 재목을 죽인다는 점에서도 지양되어야 한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박철우다. 박철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 한때 월드스타 김세진의 뒤를 이을 유일한 왼손잡이 라이트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의 배구 시스템에서 레프트 포지션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박철우는 3억짜리 잉여인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선수들을 더 살릴 수 있는 배구를 구사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배구가 국제대회에서 좀 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기원 감독님이 말씀하셨듯 스피드 배구는 국대 하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마/프로가 합심해서 어떤 방향으로 우리나라 배구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스피드배구를 하는데 쓸 수 있는 세터는 한선수, 송병일 그 이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터를 더 키워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세터를 키우고 있는 지도자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있는가? 그런 스타일의 배구를 구사하는 감독이 몇명이나 되는가?

 

FA 제도 손질, 선수 권익 증진, 더 많은 프로팀 창단, 국가대표 전임감독제, 배구전문 체력트레이너,전력 분석관 양성 등 많은 것들이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지도자를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그 이전에 배구인들이 이런 뜻을 모아 움직이느냐겠지만...)

 

우리나라의 국제대회 성적을 보자. 1990년대 한때 우리나라가 월드리그 5~6위를 다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3위~16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 이상 우리나라 배구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지표가 또 있을까?

 

예전에 트위터에서 현역선수에게 듣기로는 "배구를 그만둘 때가 되면 배구를 다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어떤 분야가 그만두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분들은 배구를 아주 오랫동안 업으로 해 온 분들이고 나는 배구 전문가가 아닌 그냥 팬이라 무지하기 때문에 선무당이 사람잡듯이 엄한 소리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신진식 감독님이 호주에 간다고 하기 전에는 우리나라 은퇴 선수들이 외국에 코치연수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내가 관심이 부족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2002년 월드컵 히딩크처럼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 가능하다면 소위 세계 제일의 배구를 하는 나라나 팀에 가서 코치 경험을 쌓아 외국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떤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지 배워야 한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외국 유명리그의 경기를 구해서 보기라도 해야 한다. 학연이나 이름값만 가지고 국가대표를 선발했던 과거의 관행도 버려야 한다. 

 

당장 겨울스포츠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안주하면 안된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외국인 선수에게만 의존하고, 드림식스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리그 중간중간에 허술한 규정 덕에 예기치 않은 곳에서 잡음이 일기 시작하면 허물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금 잘 나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2의 전성기라고 이야기되는 지금에서 기본을 탄탄히 다지는 행보를 보여주기를 배구팬으로서 간절히 바라며 두서없는 포스트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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