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열심히 보지는 않는다. 다만 전년도에 못했던 팀들 중에 한 팀을 정해서 응원하곤 했다.

그래서 매년 주목해서 보는 팀이 달랐다. 그렇다고 그 팀에 대해서 공부하고 열렬히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사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보고 정보를 접하는 게 전부.

 

그러던 중 히어로즈를,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시진의 현대-히어로즈를 몇 년간 응원하게 되었다.
우승팀이었으나 모기업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선수들.
그런 팀을 묵묵히 지켰던 건 김시진 감독대행이었다.

 

히어로즈란 이름으로 팀이 창단되었지만 힘든 시간동안 팀을 추스리고 선수,코치진과 동고동락했던 김시진은 함께 할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식 운영을 표방했던 히어로즈는 그러나 재정난에 허덕이며 KBO에 내야 할 돈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여전히 허덕거렸다. 그런 상황에서 1년 후 그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팀은 여전히 힘들었고, 급기야 정성훈,이택근,황재균,김성현 등 주축 선수들을 팔아 넘기기 시작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지만, 이건 이빨의 절반 이상을 뽑아낸 환자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김시진 감독은 신인 선수들을 발굴해내려고 안간힘을 썼고 팀을 안정시켜왔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2012년 드디어 히어로즈는 선수를 팔지 않고 FA를 영입하는 팀이 되었다.

물론 그 영입대상이 이택근 김병현이라는 물음표 세 개씩을 달고 있는 선수들이었지만,

어쩄거나 선수를 팔지 않고 선수를 영입했다는 것만으로도 히어로즈를 응원하는 입장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존에 약해진 전력이 급상승하는 건 아니었고, 전문가들의 예상을 앞에서 세는 것보다 뒤에서 세는 게 빨랐지만, 그래도 정말 운이 좋으면 히어로즈도 4강을 향해 뛰어볼 수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악전고투를 거듭했던 김시진 감독의 가을야구를 보고 싶었다. 선수와 코치진에 대한 의리와 팀에 대한 사랑으로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을 놓지 않았던 그 의리의 사나이, 히어로즈의 소나무 김시진 감독이 가을야구로 보상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앞으로 그가 히어로즈를 데리고 가을야구를 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성적부진이라는 이유로 경질당했기 때문이다. 엷은 선수층과 경험부족, 포수의 기량 미달 등의 이유로 7,8월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게 전문가와 팬들의 공통된 시각이었다. 감독 본인도 3년 장기계약을 맺은 만큼 내년에 승부를 걸겠다는 계산이었던 것 같다.

물론 7,8월에 보여준 경기 운영, 특히 투수 기용에 있어서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나왔던 건 사실이다. 

시즌 초반 송지만의 부상으로 경험부족이라는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를 잃었던 것 또한

이번 시즌 개인적으로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히어로즈가 가을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미 가지고 있는 약점이 아직 많았기 때문이다. 

 

팬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학교 등록금이 없어서, 하루 먹고 살기 힘들어서 허덕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다른편에서는 하나에 몇백씩하는 명품백이 불티나게 팔리는 세상. 빈부의 격차가 대물림되며 다른 선상에서 달리기를 시작해야 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부하는 사람들이 출세하는 세상. 다양성이 아닌 상업성을 중시하는 사회. 억 단위의 돈들이 오고 가는 비리로 얼룩진 사회 지도층. 법을 지키는 사람보다는 법을 어기는 사람이 이득을 보는 원칙없고 불공정한 세상.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점점 짧아지는 직장수명.....이런 것들로 팍팍한 게 우리네 삶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과 믿음이 있다. 그렇기에 팬들은 경기를 보면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내 것이 아닌 승리에 감동하며 위로를 받는 것이다. 오심과 태만에 정치인의 비리보다 더 크게 분노하는 이유다.

그러나 어느 덧 야구판이 우리네 삶과 똑같아졌다. 최근 2년간 모든 구단의 감독들이 교체되었다. 성적부진이 주된 이유였지만, 구단주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승을 몇번을 했건 계약기간이 얼마 남았건 감독은 하루아침에 짤리는 신세가 되었다. 감독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승리뿐이니 자신의 색깔을 내기보다는 결과에 얽매여 살게 되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팀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비정규직이 되어 회장님 눈치보고 사는 임원들과 다를 게 없어졌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팀을 유지하면 정말 망한다. 야구 감독이 팀을 맡아서 정비하고 제 색깔을 내는데는 3년이 걸린다고 한다. 3년? 직장에서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임원들에게 3년 계획은 사치다. 당장 내년에 짤릴지 아닐지가 달려있으니 뭔가를 바꾸고 계획하기보다는 당장 올해 뭔가 만들어내기에 급급하다. 그런데 야구감독도 이렇게 된다면? 감독직이 파리목숨이니 이를 지켜보는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감독을 따르겠는가, 구단 직원들을 따르겠는가? 팀을 관리하고 운영해야 할 감독에게 힘이 실리지 않으면 팀이 망하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아마 팀이 망가지고 나면 고스란히 이는 성적으로 돌아올 것이고, 팬들이 떠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팬들은 추억으로 먹고 산다. 추억은 스토리를 동반한다. 국민학생 시절 빙그레를 응원했던 그 때. 그 옛날에 친구들과 뭐하고 놀았는지는 기억 못 해도 연습생 신화 장종훈을 기억한다. 어느 팀에도 선택받지 못해 트럭운전수를 하다가 선수 생활을 했다는 한용덕을 기억한다. 2002년 삼성의 우승을 기억하는 건 악전고투했던 LG의 김성근이 있었고, 정말 소설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승엽-마해영의 홈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물 중독에 빠져있다가 지금은 텍사스의 간판 타자가 된 헤밀턴이 그의 은사와 올스타전 홈런더비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수백만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는 건 이런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히어로즈의 소나무 김시진 감독을 경질함으로써 히어로즈를 지탱하던 가장 큰 스토리를 스스로 폐기처분했고, 우리나라 프로야구에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야구는 이제 없어졌다. 실사판 야구 매니지먼트 게임을 즐기는 구단주가 있을 뿐...

 

어쩄거나 이제 나는 야구 안 볼 것 같다. 그동안에도 열심히 보지 않았지만, 굳이 회사에서 보는 걸 집에서도 보고 싶지 않다. 남은 시즌 히어로즈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할 뿐.

 

덧) 김시진 감독님. 그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당분간 야구는 보지 마시고 가을이라 날씨가 좋으니 어디 가까운 곳에 바람이라도 쐬러 가십시오. 설마 그럴리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술 한잔 사드리고 싶네요.

 

덧2) 김시진 감독을 경질한 시기와 방법도 매몰차기 그지 없다. 선수,코칭스패트와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적어도 인사치레 정도는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하지 않나. 마치 태풍이 휩쓸고간 다음에 뿌리채 날아간 소나무 마냥, 이런 식으로 끝맺음 했어야 하나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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