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포스팅을 위해 준비하는 사이, 김연경-흥국 간의 사태에 대한 FIVB에서 결론이 나왔다.
한 마디로 "김연경-흥국-대한배구협회가 합의한 대로 하라"는 것.(이 결론이 맞는지도 솔직히 의심스럽다. 흥국이나 배구협회에서 언플을 많이 해놔서 부분발췌 및 확대기사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 작성된 김연경 선수-흥국의 합의서는 일단 임대 신분으로 계약을 맺고, 6월 30일이 지난 현재의 김연경-흥국의 관계 및 김연경 선수의 신분에 대한 FIVB의 유권해석을 받아, 그 결과에 따라 계약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골자였다. (관련기사:김연경과 흥국생명의 '애매한 합의'<-클릭)
그런데 대한배구협회는 FIVB에 이 합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김연경 선수의 손을 들어 주자니 우리나라 배구 규정에 대한 시정조치 및 감시를 해야 하나 권한은 작고 책임이 크다는 점에서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흥국-배구협회의 손을 들어주자니 상식에 어긋나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 이래저래 골치가 아팠던 FIVB 입장에서는 합의서가 있으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제일 쉬운 답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결론이다. "합의서:FIVB에서 내주는 결론대로 한다, FIVB:합의서대로 하라" 엑셀에 이걸 수식으로 넣으면 순환 참조의 오류 팝업이 뜬다.
KOVO 규정상 FA관련 조항 첫번째 줄에 "매 시즌 출장(경기투입)경기가 정규리그 전체경기의 25% 이상일 경우 1시즌 경과로 인정하며 이 같은 기준조건으로 6시즌 충족 시 자격을 취득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의 "정규리그"는 우리나라 V리그를 지칭하기 때문에 김연경의 FA 자격 취득은 불가하다는게 흥국생명과 로컬룰 존중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 반면 외국에서 뛴 기간 또한 흥국생명과의 계약기간에 포함되기 때문에 흥국생명과의 계약기간은 만료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페네르바체와의 계약은 문제가 없다는 게 김연경 측의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정규리그"가 국내외 리그 모두를 지칭한다고 해석할 경우 규정 자체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고, FA에 관련해서는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여러 종목에서 각 나라의 규정을 존중하는 게 원칙이므로 김연경 선수를 FA로 보는 것은 규정상으로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김연경 선수가 페네르바체와 계약이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번 문제의 핵심 질문은 "FA가 아니면서 소속팀과의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수의 신분은 무엇인가"이다.
일단 임대기간이 계약기간에 포함되는가 아닌가는 상식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본다. KOVO 규정 어디에도 임대기간이 계약기간에서 제외된다는 근거는 없다. 만약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삼성의 새 외국인선수 레오를 인터뷰하면 된다. 레오는 지난 시즌 러시아 Fakel Novy Urengoy 소속이었지만 푸에르토리코의 Cariduros de Fajardo에 임대되어 한 시즌을 뛰었고, 계약이 만료되어 올해 러시아 파켈과 재계약했고, 이번 시즌에는 우리나라 삼성화재 블루팡스에 임대되어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 물어보자. 당신이 작년에 푸에르토리코에서 뛰었는데, 이 기간이 파켈과의 계약기간에 포함이 되는가 아닌가 라고.
계약기간 만료에 대한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계약기간이 만료된 현재 김연경의 신분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김연경 선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프로배구 선수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KOVO 규정에는 FA만이 다른 팀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고 계약이 만료되었지만 FA 자격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3년짜리 계약을 했는데 1년을 남기고 25% 이상 출전을 하지 못했다면, 그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은 계속 연장되는 것인가, 아니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되는가, 아니면 임의탈퇴 선수가 되는 것인가?
내가 글을 잘 못 읽는지는 모르겠으나 KOVO 규정에는 이런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아무리 봐도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스포츠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를 알아봤다. 프로야구에서는 FA 자격은 취득하지 못했으나 계약 기간이 만료된 경우, 원소속팀과만 협상이 가능하다고 한다. 원소속팀에서 양해를 할 경우에만 다른 팀과의 협상이 가능하단다. 프로축구는 그나마 좀 나은 것 같다. 검색으로 찾아보니 계약기간이 만료되거나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는 다른 팀과의 협상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신분 규정을 다 찾아본 것이 아니어서 이 내용이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프로배구는 어떨까? 일단 외국 리그에서는 여러 기사와 이야기들을 종합해볼 때, 계약기간이 만료된 경우 다른 팀과의 협상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선수와 구단 간의 관계가 수평적이라는 인식하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은퇴선수의 경우 은퇴한 지 몇 년이 지나건 관계 없이 리그에 복귀하려고 한다면 원소속팀으로만 복귀해야 하고, 타 팀으로 복귀할 경우에는 원소속팀의 이적동의서를 받아야 한다.(은퇴를 악용할 경우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은퇴 후 몇년이 지나건 관계 없이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계약 만료된 선수는 따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은퇴선수의 경우를 참고할 경우 원소속팀의 선수로 인정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기사에 보면 우리나라 각 구단들이 다년 계약을 맺은 선수들에 대해서 혹시 계약 해지 시 지불해야 할 금액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서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고 한다. FA 규정도 배구 선수들의 짧은 수명을 감안할 때 자격 취득할 때 까지 걸리는 6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다. FA 이적시에도 FA를 영입한 팀에서는 영입한 FA 포함 보호선수 3명 외에는 이적 가능 선수로 분류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지 않다. 구단의 부담은 곧 선수 이적의 자유를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선수가 구단과 수평적인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의 현실이지만, 배구의 경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 정도가 심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가 어떻게 끝나느냐는 김연경 선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프로배구 선수들이 소속팀과의 계약이 끝난 뒤 다른 구단과의 계약 기회를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이다. 김연경-FIVB-페네르바체가 김연경 선수의 현 신분에 대해서 재논의하고 있다는 뉴스는 반갑고, 이것이 이번 사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길 기대해본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선수의 해외 활동에 어려움이 없도록 돕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페네르바체와의 임대계약이 아니라 김연경-페네르바체의 직접 계약을 허락해야 한다(프로야구의 경우에 준해서). 김연경 선수가 KOVO 규정에 따라 FA는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나, 그렇다고 해서 흥국의 선수도 아니다. 계약이 만료된 선수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은 다시 말하지만 없다.
만약 이번에 김연경 선수의 신분이 흥국생명 소속으로 결론이 날 경우, 김연경 선수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혹은 배구 선수들 모두가 힘을 모아 헌법소원 또는 이 불공정한 계약 관계를 시정할 수 있는 법적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실 에이전트 측에서 페네르바체와의 계약 추진 이전에 이것부터 하고 시작할 줄 알았다. 더 강하게 나가려면 페네르바체와의 계약을 하지 않고 흥국생명에 손해배상 청구를 했어야 확실했겠지만, 김연경 선수의 기량 유지를 위해서 아마 계약을 우선 추진했던 것으로 보이지만(라고 좋게 생각해본다.), 조금은 여우같은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있었던 건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쨌거나 이번 사태를 통해서 우리나라 프로배구에서, 더 나아가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에서의 구단과 선수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선수들에게 불합리한 부분은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반인의 상식에 맞는, 말 그대로 글로벌스탠다드에 맞는 제대로 된 결론이 나길 바란다.
덧) 혹시나 만약에 흥국과 배구협회/KOVO가 FIVB의 결정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나올 것을 우려해서 합의서를 FIVB 측에 보낸 거라면, 그간 본인들의 뻘짓에도 불구하고 배구를 사랑했던, 배구의 흥행 기반인 팬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등 돌릴 거라는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진심으로...
덧2) 김연경 선수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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