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배구는 여자부가 금메달, 남자부는 동메달을 획득하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시안게임은 끝났지만 앞으로 국제대회는 계속 이어지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나타난 장점과 단점을 잘 살려서 앞으로 이어나가야만 국제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기에, 이번 아시안게임을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 여자부 ■

1.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신구의 조화

이효희/남지연이라는 노련한 선수들부터 이다영/재영 쌍둥이 막내들까지 신구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대표팀이었습니다. 주장인 김연경 선수를 비롯, 현재 우리나라 선수들 가운데 각 포지션에서 가장 좋은 선수들이 뽑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구의 조화가 이루어지면 선배들의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전달되며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합니다. 

특히 김연경 선수는 대표팀 에이스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대표팀 내 다른 선수들에게 자기발전을 위한 동기부여를 하는 역할까지 잘 해냈다고 봅니다.

이 선수들의 특징을 연구하여 최상의 조합을 만들어 낸 이선구 감독의 용병술도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김연경 선수의 대각인 박정아 선수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대신 한송이 선수의 수비 비중을 늘렸고, 한송이 선수는 대회 내내 나름 안정된 수비로 뒤를 받쳤습니다. 김해란 선수도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며 수비에서 큰 몫을 해냈습니다.


2. 2016년까지 계속 될 대표팀

현재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의 나이가 많지는 않기에 만약 부상없이 2년이란 시간을 보낸다면,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서도 이 팀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때가서는 한두 포지션 정도는 구멍이 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표팀에 뽑히지 않은 선수들 가운데서도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재의 대표팀이 잘 유지된다면 김연경 선수의 소원대로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서는 메달권 진입이라는 쾌거를 이뤄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3. 대표팀 전임 감독이 필요하다

이런 좋은 조건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다른 나라의 전력을 분석하는 대표팀 전임 감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번의 경우 이선구 감독이 고생을 하셨습니다만, 이선구 감독님은 프로팀 감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표팀 운영의 노하우라던가, 선수들의 장단점 및 상대팀 전력분석 자료들이 연속성 있게 보존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대표팀 전임 감독이 선출되어서 현재의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여자배구 대표팀[사진출처:대한배구협회 페이스북]


■ 남자부 

1. 체력이 너무 달렸던 대표팀

우리나라 대표팀은 V리그 종료 후 소집되어 월드리그, AVC, 세계선수권대회를 거쳐 아시안게임에 참가했습니다. 2군 체제를 갖출 수 없었기에 대표팀 선수들은 잠시도 쉬지 못하고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몇 년간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힘든 일정을 보냈던 선수들인데, 조금의 휴식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훈련/대회를 반복하다보니, 정작 목표했던 아시안게임에서 체력적으로 많이 달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그 동안 대표팀에서 주득점원 역할을 했던 전광인 선수가 대회 후반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양쪽 날개의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져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KOVO와 대한배구협회 간에 좀 더 적극적인 협조가 이루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 숙제가 분명해진 일본과의 준결승전

일본과의 준결승전은 우리나라 남자배구의 숙제가 그대로 드러난 경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가 월드리그에서 고전하면 해설자들이 늘상 하던 말은 "기본기 부족"이었습니다. 특히 서브리시브와 2단토스의 부정확함은 우리나라가 국제대회에서 패배한 날 모든 기사를 도배하던 단어였죠.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곽승석 선수와 정민수/부용찬 두 리베로가 보여준 기량은 그 간의 지적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일본과의 경기에서 드러난 우리의 약점은 "서브"와 "속도"였습니다. 상대의 서브는 강했고, 우리는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많은 서브범실이 있었습니다. 또한 최근 2년 정도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선수간 호흡 불일치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일본 대표팀은 올해 월드리그에서는 조금씩 그 호흡을 가다듬더니,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완벽하게 부활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본의 빠른 공격은 수시로 우리나라 코트에 떨어졌습니다.

결승에서 탈아시아급으로 성장한 이란의 벽은 넘지 못했지만 그래도 1~2세트 이란과 견주어 비등한 경기를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제 세계배구의 흐름에 맞추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강한 서브에 이어지는 강력한 블로킹. 그를 위한 대표팀 전력분석의 강화. 그리고 소위 뻥배구가 아닌 빠른 배구 위주의 전략. 이를 위한 체력프로그램의 보완.

이것이 우리나라 남자배구에 주어진 숙제입니다.


3. 문제는 숙제 해결의 의지

문제는 그 숙제를 풀 의지가 있느냐 입니다. 

박기원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을 맡고 나서 빠른 배구를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셨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늘상 우리가 국내경기에서 보던 스타일의 경기를 했죠. 결과는 월드리그 전패라는 불명예였습니다.

박기원 감독님이 부임한 뒤 월드리그에서의 승률을 끌어올리면서 빠른 배구의 효과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맞춤인 체력프로그램을 완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이 긴 V리를 소화하는 프로팀이 세계 배구 추세를 따라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카드가 매 시즌 후반 체력부족으로 봄배구 진출에 좌절했던 사실이 이를 잘 시사합니다. 

빠른 배구를 구사할 수 있는 감독도 없습니다. 해외에서 지도자연수를 하는 등 세계 배구 흐름을 따라가려는 지도자가 없고, 지도자들이 몸담고 있는 곳이 V리그인 이상, 빠른 배구를 구사하는 감독은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선수 제도 또한 손질이 필요합니다. 외국인선수가 팀 공격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저 수비나 외국인선수 때리기 좋은 공을 올리는 역할에 국한되는 것이 사실이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뛴 주전세터는 작년에 프로리그에서 주전으로 뛴 세터가 아닌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중이었던 한선수 선수였습니다. 현역 선수도 아니고 상무 소속이 아닌 한선수 선수가 국가대표 주전 세터였다는 점은 배구계로서는 뻐져리게 아파해야 합니다. 올해 국가대표팀에서 라이트로 맹활약했던 서재덕 선수도 소속팀에서는 레프트로 반년 이상을 보내야만 합니다. 라이트에서 우리나라의 높이를 책임질 것으로 믿었던 박철우 선수는 중요한 막판 두 경기에서 벤치만 달궜습니다. 이제는 외국인선수의 자격에 제한을 두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을 퇴보시키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팀이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박기원 감독님이 언제까지 대표팀을 맡으실 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박기원 감독님이 대표팀을 떠나신다면, 

"이제 우리도 빠른 배구를 추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할 지도자가 다시 나올 지 의문입니다.

그나마 월드클래스급으로 성장한 이란이 있어서 우리가 쫓아가야 할 목표가 있기에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배구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과 배구인들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란배구가 탈아시아급으로 성장하는 이 순간, 아시아 1위의 자존심을 찾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단이 말이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남자 대표팀[사진출처:대한배구협회 페이스북]


■ 국가대표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지난 4개월 쉼 없이 달려온 남녀 국가대표 배구팀 선수들과 모든 코칭스태프분들께 배구팬으로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메달 색깔보다는 여러분들이 최선을 다하셨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남자부가 결승 진출에 실패한 순간 가장 걱정되는 사람이 두 분이었는데, 기사를 보니 그 두 분이 결국 눈물을 보이셨더군요. -_-;;;; 

(눈물 쏟은 박기원 감독 “선수들에 못 해준 게 마음에 걸려”  [AG]"이런 대표팀 또 없을 것"…전광인의 눈물)

기쁨과 아쉬움은 뒤로 하고 이제 좀 쉬시길. 그리고 선수분들은 또 다시 시작되는 V리그에서 부상없이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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